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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루카 6,27-38)

정이시돌 2025. 2. 23. 20:10

사랑의 실천 / (루카 6,27-38), 9시 미사

 

     † 찬미 예수님!
예전에 전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그리 특별해 보이지도,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철을 타면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전철에서 본지가 꽤 오래 되었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주 특별해 보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라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에 기준이, 옛날처럼 스펙을 얼마나 많아 쌓았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채용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정말로 대단해 보입니다. 자기 PR시대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요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 모습일까요? 전철 안에서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는 모습이 특별해 보이지 않듯이, 남들이 하는 대로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는, 다시 말해 특별한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그러나 좋은 가치를 행하는 나의 모습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자신을 남들에게 부각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손해 보는 것 같고,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보기에 좋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실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남들처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사랑의 실천이,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루카 6,27-28)고 말씀하십니다.
   남들처럼 산다면, 내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가져야 남들처럼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사랑의 실천은 ‘무조건적인 사랑’ 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을 닮아 완전한 사람이 되는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들이 지킬 수 없는 말처럼 보이지만, 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위협할 때를 떠 올려 보십시오. 마음이 편안하셨습니까? 행복했을 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위협의 정도에 따라 그만큼 마음이 불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불편하고 불행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행동 강령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유롭게 실천하자는 초대이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 하느님의 생명 안에 살겠다는 고백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옛 성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살고 사랑하고 웃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용서하고 자비롭게 베푸는 것이 살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머리로서는 쉽게 이해되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기만 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툴고 부족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이런 우리의 노력을 하느님께서는 어여쁘게 보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 신앙에서 하느님을 전능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자비와 용서와 사랑에 전능하시다' 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무능하지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앙인은 그 실천에 초대되었음을 기억하시면서,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조금씩이나마 배워서 실천해 나가면서, 행복 가득한 한 주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박태경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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