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요한 3,16참조)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지만,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상황이 바뀌면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에서도 그와 같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두 가지 사건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복음에서(요한 3,16참조) 예수님께서는 구리 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구리 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매면서 그들이 불만이 쌓여갈 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위와 허기와 공포에 빠졌을 때, 그런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마음은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허기지고 배고프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 두려움 속에서 찾고 의지했던 것이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바알신을 믿게 됩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제1독서 내용입니다. (에페 2,4-10) 왕국을 만든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하며 주님을 배신하게 됩니다. 자신의 만족을, 욕심을 더 채우고자 이방인 신을 믿으며 하느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빌로니아로 유배생활이라는 벌을 내리십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믿음을 생각해 보면, 하나는 두려움이 될 수 있고, 하나는 우리의 욕심, 만족, 이 두 가지가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고 독서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주님을 믿는다면서 그 믿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분명히 우리도 그 두려움과 욕심에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과 욕심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에페 2,10)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나 욕심뿐만이 아니라 선행이라는 마음도 심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도 당신의 사랑과 의지를, 당신의 뜻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도 단순히 마음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 두려움과 욕심을 먼저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선한 것을 바라볼 것이냐 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시선을 잘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촛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면 쉽게 꺼질 수 있는 촛불 같은 마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열심히 산다는 것은 촛불 같은 마음을 횃불처럼 크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써 정말 열심히 살 수 있고, 횃불처럼 타오르는 그 믿음이 이 두려움과 만족, 욕심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도 이 촛불 같은 하느님에 대한 마음을 훨훨 타오르게 하기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 얘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종종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믿음이 약해서, 죄를 많이 져서, 주님을 따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희생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뒤로 밀어 놓은 채 두려움과 욕심만 바라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겠죠.
아까 미사 시작할 때 여러분께 여쭤봤습니다. 여러분들은 평소에 좋은 생각을 많이 하세요. 아니면 나쁜 생각을 많이 하세요. 좋은 말을 많이 하세요, 나쁜 말을 많이 하세요. 어쩌면 내가 좋은 말을 많이 한다면 그만큼 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선한 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내가 나쁜 말을 많이 하고, 나쁜 생각을 많이 한다면 두려움과 욕심에 많은 관심과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부탁을 드린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을 때 자그마한 촛불이 횃불이 되어 우리가 더 사랑할 수 있게, 더 용서할 수 있게, 더 희생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한재희 스테파노 주임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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