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눈여겨보니 아주 열심히 믿거나 누가 보기에도 착하게 사는 사람한테도
재난이나 불운이 시도 때도 없이 닥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럴 바에야 하느님을 뭐하러 믿나? 있으나 마나 한 하느님이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 됐다.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 닥치자 마침내 하느님이 있긴 어디가 있냐고 포악을 떨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부정의 고비를 수없이 겪고 난 지금,
적어도 하느님이 계시긴 어디 계시냐는 소리는 안 하게 됐다.
그동안의 어떤 몸부림도 어떤 저항도 다 그분의 뜻,
그분의 손바닥 안에서의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내가 애타게 도움이나 해답을 구할 때마다 그분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남들은 계시나 응답도 잘 받는다는데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신비체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침묵은 답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나에게 가장 적절한 해답은 바로 침묵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해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때 비로서 내 안에 그분이 같이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중에서 , 박완서 지음, 열림원-
(강화성당 제대)
'천주교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동체의 날 (9구역) (0) | 2014.07.27 |
---|---|
광야에서 희망을 만나세요 (0) | 2014.07.21 |
공동체의 날 (8구역) (0) | 2014.07.14 |
예비자 받아드리는 예식 (0) | 2014.07.06 |
공동체의 날 (0) | 2014.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