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언덕/정무용의 사진 이야기

천주교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마르 1, 12-15)

정이시돌 2021. 2. 23. 22:26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함께 포함된 말입니다. 위기는 피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순 제1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성경 안에서 사용되는 유혹이라는 단어도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유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또 다른 의미에서는 시련, 시험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유혹은 죄를 끌어들이는 의미도 있지만 시련, 시험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은 넘어지면 걸림돌이지만 반면에 더욱 굳세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순 시기에는 마르코 복음을 묵상하게 되는 데, 예수님의 유혹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1,13) 라고 짤막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유혹을 받으셨는지는 다들 아실것입니다. 첫 번째는 돌을 빵으로 만들어 봐라이고, 두 번째는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봐라입니다. 세 번째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이 세상 모든을 것을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사탄이 저에게 와서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봐라 한다면 그게 저한테 유혹이 될까요? 저한테 유혹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은 유혹이 아닙니다. 유혹이 되려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선택이 나에게 유혹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능력이 없다는 조롱밖에 될 수 없습니다. 바꿔 생각해서 예수님께 그런 유혹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네, 예수님은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다른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예수님이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마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꼴이 된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권능은 사탄에 의해서 들어나고, 사탄도 인정한 분이라는 것을 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사탄도 인정한 하느님을 놔두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됩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할 디딤돌인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유혹은 항상 그럴싸한 명분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흔드는 게 유혹입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죽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했을 때, 베드로는 주님,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펄쩍 뛰며 이야기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그 길을 가시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것은 유혹입니다. ‘갈까!, 가지말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유혹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유혹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인 시련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하고 놀렸습니다. 왼쪽 십자가에 달린 도둑도 조롱하였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살리고 당신도 살려봐라하고 말입니다.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에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도 있고, 양 편에 있는 죄수도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유혹인 것입니다. 하실 수 있었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시련으로, 디딤돌로 바꾸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대놓고 우리를 유혹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친숙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모습을 통해서 유혹은 다가왔고, 십자가상에서도 고통을 피하고 싶고,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 때도 유혹은 끈질지게 다가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때로 그럴싸한 명분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맞서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 봐라 했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사탄을 물리쳤을까요?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먼저였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정말로 굶주린 이를 위해서는 빵이 먼저였습니다.

 

        우리가 잘 하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4천 여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면, 많은 군중들의 굶주림 앞에서 사탄에게 하신 것처럼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굶주린 군중 앞에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빵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하고 먼저 배고픈 이들을 위해 빵 걱정을 먼저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빵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라고 유혹을 이겨내신 분이셨지만, 정말로 굶주린 이들을 위해서는 빵이 먼저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이웃의 굶주림에 대해서는 말씀이 먼저지 하면서도, 나의 굶주림에 대해서는 말씀이 뭐고 일단 빵이 먼저야라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탄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면 세상을 다 주겠다라고 유혹을 하셨을 때, 예수님은 결코 사탄의 유혹에 무릎을 꿇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진해서 무릎을 꿇으신 적이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사탄 앞에서는 절대 무릎을 꿇지 않으셨던 예수님이 스스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앞에서는 결코 무릎을 꿇으시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스스로 몸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릎을 꿇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 성공과 출세를 보장해 준다면, ‘사람에게 무릎 꿇는 것쯤이야, 눈 딱 감고 할 수 있어라고 쉽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는 무릎 꿇기 힘들어합니다그냥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되어서 멀뚱멀뚱 서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하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때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언제였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 때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바로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서 지금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라는 사람이 그냥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는 그 순간이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그 때입니다. 그 때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는 성령이 이어지는 것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그 영광을 받으시는 그 순간에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광야는 단지 유혹의 장소만이 아니라, 시련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복음은 우리에게 이야기 해 줍니다. 광야는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그러한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에 맞서기 위해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큰 유혹에 닥치더라도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유혹들이 그런 고난들이 마치 예상치 못한 일인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게 그래 당연한 것이지, 예수님도 받으셨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유혹이 다가오니, 당당하게 유혹들 앞에서 일희일비하면서 요란하게 굴 것이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이겨내면 되지! 성령께서 함께 계셔, 예수님도 성령이 광야로 보내셨음을 기억하면서, 사탄마저도 인정한 그 분이 우리와 함께 광야로 나갔음을 기억하면서 유혹들 앞에서 우리가 좀 당당해졌음을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지만, 결코 우리를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돌을 갖다 놓 으셨다면 그것은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로 놓으신 것이 아니라, 밟고 일어서서 더 높이 올라가라는 디딤돌로 내 앞에 돌을 가져다 놓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신앙의 삶 안에서 만나는 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고, 많은 유혹을 시련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사순시기, 광야의 여정을 같이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김현웅 바오로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

 

 

 

(강화그리스도왕 성당, 사순 제1주일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