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르 12, 28-34)
연중 제 31주일 9시 미사
+ 찬미 예수님!
2주 만에 성당에 오니까 확 달라졌습니다. 창문이 환하게 뚫린 것처럼 시원하고 넓어 보이고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변화가 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정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계명하면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르세요?
(십계명!) 네 십계명이 떠오릅니다. 십계명은 누가 하느님께 받았지요? (모세입니다.) 어디서요? 네, 거룩한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혼자 기도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이 내려와서 돌 판에 새겼습니다. 십계명을 다 아시죠? 첫 번째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 두 번째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세 번째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네 번째는요? 부모에게 효도하라, 다섯 번째는 살인하지 마라, 여섯 번째는 간음하지 마라, 일곱 번째는 도둑질을 하지 마라, 여덟 번째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아홉 번째는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마지막으로 열 번째는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같이 외어 보았는데 처음 들어 보는 것처럼 생소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웃음) 이렇게 십계명을 다시 되새겨 보았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십계명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머리로만 기억하는 게 아니리 사람으로서 최소한도로 지켜야 할 하느님이 주신 계명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돌에 새기듯이 우리 마음에 꼭 간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10개의 계명을 받고 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 백 년을 지나면서 10개에서 더 많이 생겨났어요. 636개로 늘어났습니다. 10개의 계명에다 더 지켜야 할 계명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예수님, 이 많은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냥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제1독서(신명 6, 2-3)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렇게 수많은 율법을 짧고 간결하게 정리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한 계명을 표현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왜 두 가지 계명이 하나의 계명이 될 수 있나 하면 아우구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두 계명은 사실은 하나의 계명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안다는 것입니다.’바로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시고, 우리 죄를 없애주시고 부활하셔서 하느님 나라의 은총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큰 하느님의 큰 사랑과 자비를 만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심판하고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아주 당연하게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계명 얘기를 했으니까 이제 성경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두껍습니다. 반 정도는 구약이라고 ,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기록이고, 예수님이 오신 후의 기록은 신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46권이고, 신약은 27권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말씀은 한 문장으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성경의 많은 글들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하느님은 나를 사랑 하신다’ 우리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볼까요?(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분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힘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는 우리는 바로 그 다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나의 차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이삭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데 지금은 나의 차례이니까 ’나의(엘리사벳)의 하느님‘ ’형제님의 하느님‘, ’자매님의 하느님‘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느님을 이야기 하고, 이제는 여러분들이 체험한 ‘나의 하느님’이 됩니다. 아! 하느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차례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죄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죄가 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가 하면 죄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습니다. 이기적이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경쟁하듯이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사랑과 반대되는 행동이죠.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는 경쟁에서 잘난 놈, 힘센 놈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구를 이기고, 누구보다 착하고, 누구보다 미사를 많이 나오고, 누구보다 잘나서, 누구보다 힘이 세서, 똑똑하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 25-27}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첫 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17-28) 하느님의 종은 겸손하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드립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 드리는 모습은 종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오늘 분명하게 천주교회의 가장 큰 가르침인 계명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 모든 가르침은 우리의 뼈대이고, 허리이고, 심장 같은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가르침을 사랑하면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대하게 됩니다. 죄의 영향으로, 죄 때문에 경쟁하고 서로 이기려고 배신하고, 뒤통수 쳤으면, 이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공짜로 용서 받고, 귀한 대접을 받았으니, 주님의 가르침대로 나도 그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잘 실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란 것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자주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잘 잊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까? 이렇게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성채조배도 하고, 성경을 매일 읽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느끼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생각으로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는데 생각으로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챙겨주고 위로하며 행동으로 사랑합니다.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 슬픈 사람, 힘든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든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도움을 주고 노력하며 실천하는 것까지가 사랑입니다. 절대 머릿속에 서만 있어서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의 실천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간단한 계명을 돌 판에 새기듯 내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청하오니 작은 다윗이 어마어마한 골리앗을 이겼듯이 내 안의 나약함과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 앞에 작아지지 않고 미루어 왔고, 피해왔던 그 싸움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아멘!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박용태 루카 신부님 강론 중에서 발췌-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야경,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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