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언덕/정무용의 사진 이야기

봄의 언덕 이야기

괜찮아 /한강

정이시돌 2024. 10. 17. 09:30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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