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르 10,2-16)
2021. 10. 3. 9시 미사
+ 찬미 예수님!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여성과 남성, 이 둘이 하느님 앞에서 혼인의 거룩한 약속을 한 것을 기억하고, 쉽게 이혼을 생각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를 통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혼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에 뉴스나 주변에서 이혼이 멀리서, 티브이에서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고, 이런 말을 아시나요? ‘돌씽!’, (돌아온 싱글입니다.) 맞아요, 이런 단어가 있지만, 교회에서는 이혼을 쉽게 하는 것을 우려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혼을 쉽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는 이혼이 인생은 큰 고통 중에 하나이며 아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에도 이혼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덜 불행하고, 조금 더 행복해 지려고 이혼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렇습니다. 이혼을 하기 전에는 남자 여자, 남편, 아내 둘이서 힘들었지만 이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아프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기시죠! 이혼을 하기 전에는 둘이서 힘들지만, 이혼을 하고 나면 주변의 시선과 말 때문에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이혼은 인생의 실패가 아닙니다. 이혼한 사람이 큰 문제가 있고 하자가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착각이고 편견입니다. 이런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도 세상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손가락질 하고, 뒷 담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닮으려는 천주교 신자가 그렇게 손가락질하고 뒷 담화 하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악마가 여러분 마음에 발붙일 기회를 주지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혼하고 힘든 사람, 약자들을 위로하셨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오늘 교회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혼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조당’에 걸리는 것을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무엇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가르침이 최우선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어려운 사람, 마음이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을 도와주고 그들의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서 배려하고 그들이 보호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참다운 우리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혼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혼장에는 여성 차별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오랜 옛날입니다. 그 시대는 일부다처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혼장이라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 아내를 이혼장을 써 주고 헤어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남성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남성이 훨씬 위에 있었기 때문에 여성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조선 시대처럼 아주 부자 집안이 아니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이혼장을 써서 이혼을 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입니다. 이렇게 이혼을 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예수님께서 꼭 집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가장 잘 챙기고 돌봐줬던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과부와 고아입니다. 왜 과부와 고아였을까요? 바로 이혼을 하거나 홀로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차별에는 인종차별이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갑질하는 것, 이런 차별보다 여성 차별이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창세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후에 남자가 자는 사이에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들었다.’ (창세2,18-24)
이 말씀은 남자에게서 갈비뼈를 빼내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들어내기 위해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생명과 직결된 심장과 가까이에 있는 갈비뼈처럼, 잘못하면 죽잖아요. 이렇게 소중하고 너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창세기는 적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의 차별은 오랜 시간 동안 문화 안에서 악순환이 존재해 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티브이 쇼를 봤는데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여러분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여성에 관해서, 집안일에 관해서 물어봤습니다. 형제분들은 무엇이라고 답변했을까요? 대부분 다 나는 그래도 진보적이다. 집안일도 도와주고 가끔 설거지도 한 적이 있고 등등,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그렇게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거기에 대해서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형제님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집에서 담배도 피고, 말도 안하고, 엄마에게 시키기만 하는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나는 아버지보다 조금은 개방적이기 때문에 진보적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자매님들은 과연 좋은 남편이나 형제님의 기준은 어디서 찾을까요? 바로 티브이 드라마 입니다.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남편들은, 어때요? 너무 착하고 달콤하고,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생각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남성이나 여성의 차이,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 그런 차이에 대해 서 우리가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변화는 그냥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편견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과 우리 가족에 대한 차별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어머니, 여러분의 누나, 여러분의 여동생, 여러분의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성 차별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회 안에서 받는 차별을 우리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셔야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자로서도 중요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불평등하지 않고 공정한 그런 문화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오늘 복음에, 성경의 메시지라는 것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도 사실 여성의 중요성은 성경을 통해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여성 제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적응력이 강하고 열성적인 여성입니다. 한 예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남자 제자들은 흩어져 공포에 떨고 낙심하였다면, 혼자 무덤에 가서 무덤을 지키고, 그럼으로써 부활을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은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회 역사상 한 인간으로서, 성인으로서 가장 모범적이고 존경한 분은 성모님이십니다. 여성성과 어머니의 모성을 가지고 교회 신자들을 위해서 어머니 역할을 하셨습니다.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여성과 남성 모두 차별 없이 존중받는 것이 성경과 예수님의 뜻임을 꼭 기억하고, 우리 가정에서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도록 평소에 말과 행동을 반성할 수 있도록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합시다.
주님! 주님은 좋으신 분, 당신 자녀들의 마음 속,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시고
서로 아끼며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박용태 루카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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