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언덕/정무용의 사진 이야기

천주교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우리 모두 동방박사

정이시돌 2024. 1. 8. 09:19

우리 모두 동방박사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공현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드러나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성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드러나심을 경축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모든 민족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방박사라고 하죠, 오늘 복음을 보면 선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동방박사들은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백인, 흑인, 황인, 이렇게 세 민족을 대표하는, 그래서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매년 맞이하면 생각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제가 서품 받기 전에 부제였을 때에 수원교구 어느 한 본당에 파견을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본당도 강화 성당처럼 아주 오래된 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시골 중에 시골 성당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있는 것이 딱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우체국, 하나는 포장마차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치킨집이 있었어요. 그래서 포장마차나 치킨 집에 가 있으면, 성당 신자들을 다 만날 수 있었어요. 거기밖에 왔다 갔다 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또 한 곳은 신부님께서 교육관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놓으셨어요. 그래서 매일 저녁이 되면 교우들이 다른 곳에 놀러갈 때가 없으니까 모두 성당 교육관에 와서, 어떤 분은 떡 하나 가져오고, 어느 분은 과자 하나 가져오고, 어떤 분은 고기 삶아오고, 어떤 분은 소주 한 병 가져오고, 그러면서 매일 밤 노래방 기계 주위에 모여 노래하다 가시고, 노래하다 가시고......!

 

    그러던 본당인데, 워낙 시골이다 보니까 주일학교 학생들이 스무 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 중등 다 합쳐서요, 이 친구들이 주님 공현 대축일이 되면 하는 행사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삼왕(三王)놀이라는 것을 했어요. 이것은 본당의 전통적인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행사가 무엇인가 하면, 오늘이 주님 공현 대축일이잖아요. 어제가 토요일이니까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과 미사를 드리고, 파견예식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중 대표 세 명을 뽑아서 삼왕처럼 분장을 해요. 미사가 끝나면 본당의 모든 가정집을 방문합니다. 방문을 하는데 집까지 들어가지 않고, 집에 들어가서 초인종을 누르면 교우 분들이 가족을 데리고 나와요. 그러면 친구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그들이 준비한 과자나 사탕, 꽃다발을 전해주면 가정에서 복을 받고나서 감사 예물을 줍니다.

 

   그런 행사를 다 하고나면 새벽 2시경쯤 됩니다. 그러면 그 친구들이 마을회관이 갑니다. 마을회관에 잠자리를 다 펼쳐 놓습니다. 그런데 잠을 안자요. 젊어갖고 (웃음), 밤새도록 노래하고 수다 떨고 놀다가 어느 순간에 잠이 들어있으면 한 10시쯤 돼서 교우 분들이 막 깨우러 오세요. 그리고 세수 시키고 다시 삼왕 복장을 하고 11시 교중미사에 아이들이 미사에 모두 참례합니다. 그리고 미사 봉헌 시간에 가정을 돌면서 받아 온 감사 예물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모아진 돈은 주일학교 친구들 이름으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병든 어르신들을 위해서 쓰이고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삼왕이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동방박사들이 선물을 들고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어떻게 보면 다른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선물을 들고 그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나누어줄 수 있을 때, 또 그런 것을 함께할 수 있을 때, 사실 우리가 동방박사들을 정말 본받을 수 있는 , 그리고 그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좋은 선물을 가지고 하느님께 경배 드리고, 또 좋은 선물을 많은 이웃들과 나눈다면, 결국 그것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 친구들은 다 서른 살이 넘어서 시집장가 다 갔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기억이 참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결국 그것은 커다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작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노래하나 살짝 불러준 것이지만, 그 작은 것 하나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하느님의 열매들이 열리는 구나를 생각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이해서 2,000년 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또 다른 동방박사가 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좋은 것을 전해주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선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과 가정 안에 하느님이 주시는 따뜻한 사랑이 항상 우리와 함께 머물 수 있기를 청하면서, 이 미사 중에 우리도 또 다른 동방박사들로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은총 청하면서 이 미사를 함께 봉헌했으면 좋겠습니다.

 

 

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 가경웅 젤마노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