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 (마르코 6,1-6)
+ 찬미 예수님!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에 관한 일화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신하들과 함께하는 연회장에서 무학 대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보니 대사님의 모습이 꼭 돼지 같아 보입니다.” 이 말을 듣고 무학 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태조 이성계는 “대사는 내가 무엇처럼 보입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무학 대사는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나는 대사를 돼지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대사께서는 나를 부처처럼 보인다고 하십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에 무학 대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처럼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가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인식이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보이는 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을 자신의 생각으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내려 가셔서 그곳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그 지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으로 기적도 일으키십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직접 체험합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평범하게 자라왔던 모습만 보고, 그분의 대단하신 능력은 인정하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넘어 의도적인 불신마저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치유를 보면서 그것이 하느님의 지혜이며 기적임을 분명히 보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펼치고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목수인 것도 알고, 가족들이 사는 모습도 잘 알기에 저 사람이 크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 어쩌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못마땅해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불신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도 많은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 잘 안다는 착각이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는 아는 것이 많아서 오히려 자신의 믿음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듣고 많이 알고 있기에 이와 같이 자신의 믿음에만 빠지는 것에 대해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는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할 수 있도록 더 큰 믿음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을 넘어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부 요한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는 우리의 믿음의 능력에 따라 베풀어지기에 그분께서는 내가 믿는 대로 되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아는 믿는 만큼만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할 수 있는 한 주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김준희 대건 안드레아 부제님 강론에서 발췌-
마니산 성당 제대 (강화지구 공동체를 위한 한마음 기도, 포도나무), 2021. 7. 4
사진촬영 : 김유미 에밀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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