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언덕/정무용의 사진 이야기

천주교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정이시돌 2021. 8. 24. 21:37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6, 60-69)

 

 

    여러분들은 내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생각에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 마음 어디에 행복이 달려 있는지, 행복이 떨어지면 행복이 없어지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사람들이 돈이나 재물, 성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만큼 많다는 건 우리도 그만큼 귀가 얇기 때문에 그렇게 휩쓸려 간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사랑과 우정, 명예도 행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과연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강론에서 많이 다루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피정 강의 중에 행복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어느 한 본당에 주임 신부님이 피정을 가신 관계로 제가 일주일 정도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만난 자매님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미사가 끝난 후 한 자매님이 신부님, 저는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제 남편도 가정에 충실한 편이고, 아들도 공부도 그럭저럭하고 건강도 좋아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하느님께 감사드리시고, 그렇게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이 너무 좋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그 자매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부님 저는 너무 불행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니? 일주 일만에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차를 마시며 그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왜냐하면 기쁜 이야기를 할 때도 잘 들어 줘야하지만,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할 때는 신부가 더 잘 들어줘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동창회를 다녀왔는데 늦게 도착한 자기 친구가,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도 잘 못했는데, 어디서 신랑을 잘 만났는지 기사가 열어 주는 승용차에서 내리고, 비싼 옷을 입고 여러 가지로 자랑을 하는데 내 자신이 너무나 불행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자,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주일 후, 일주일 전, 이 자매님의 행복과 불행이 진짜일가요? 저는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주일 전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남편이 바람을 피거나, 아들이 사고를 치거나, 공부도 못하고...., 자기와 비교해 보니까 내가 너무나 행복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 안 피고, 아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등등, 우리 집안이 괜찮은 것 같았어요. 그러니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동창을 만났는데 친구가 돈이 많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저는 자매님이 생각하는 행복이 가짜 행복이고, 가짜 불행입니다. 왜요? 그 자매님은 변한 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갑자가 돈이 많아졌을까요. 갑자기 집안이 아프고 그랬나요? 일주일 전이나 일주일 후 상황은 똑같은데 주변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진짜로 행복해 지려면 가짜 행복과 불행에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비교하면서 가짜 행복과 가짜 불행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자지우지 하는 기준이 재물이나 사회적인 지위, 성공 여부, 돈의 유무 등 이렇게 남과 비교하면서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또 비교하면서 불행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생각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 24,1-18) 여호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합니다.

,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고, 따를 것인지 정하십시오. 나와 내 가족은 주님을 섬기고 따를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동안 다른 나라를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나라의 부유함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부유함을 체험하면서 다른 나라의 이교도와 그 문화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심이 흔들흔들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의 마음속에 어! 주님을 믿는 것도 좋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나약함을 꼬집으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모두가 부유한 것과 주님의 가르침 가운데 우리는 어느 것을 밤낮으로 마음에 품고 살고 있습니까사실 밤낮으로 돈 걱정하는 사람은 마음의 병이 생깁니다. 돈 걱정, 미래 걱정, 출세에 대한 욕심, 사람들 속에서 내가 깔보이지 않고 돋보이고 싶은 욕심, 이런 것들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밤낮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적어집니다. 돈이나 학력, 지식이나 어떠한 힘으로든지 남위에 올라가고자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힘들고 재미가 없어집니다.

 

   맞습니다. 서로 경쟁하면서 행복을 좇는 것은 결국 서로 존중하지 못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곳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나 마음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마음이 경쟁 안에서 메말라 가면 부족한 내 자신도 더 싫어지고, 주변 사람과 인간관계도  서로서로 이용하는 것만 같아서 싫증이 나고 지쳐갑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지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있고 싶고, 현실은 고통이니 좋은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합니다. 이 모습이 상처 받고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모든 인간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좀 크면 친구들과 우정과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좀 더 커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랍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서 사랑을 받으며 죽는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런데 돈이나 부유함이나 재물을 좇다보면 그런 영적인 행복과 사랑이 멀어져 갑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에게는 돈이 축복처럼 보이지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돈이 저주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따르던 많은 이들이 하나둘씩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주님의 가르침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욕심의 목소리에 더 크게 관심을 가집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그것과 반대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주님의 집에 모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끝가지 따랐던 열두 제자들처럼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 주님께는 참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저희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요한 6,60-69)

     이렇게 제자와 같은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이 오늘 미사 중에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미사 봉헌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요, 내가 살고 싶은 그 행복한 삶속에 주님이 오실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박용태 루카 신부님 강론에서 발췌

 

(강화 그리스도왕 성당,   2021. 8. 22)